여행지에서.

길 상 사 ....(성북동 한성대 입구역 하차)

비취. 2011. 8. 13. 08:26

 

 

 

 

길상사입구입니다..가는 길에 주택들이 너무 멋집니다..

 

     길각산 길상사... 일주문입니다..  

 

극락전입니다... 

 관음 보살상.. 

 

 

 뒷길로 쭉 올라가니 길상선원이 있습니다..

스님이 공부하시는 곳이라고

 

소리없이 지나가라는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발을 곧추세우고 살며시 걸어갑니다 

 

 

지난날 삼청각과 함께 이름난 요정이였던 대원각이

길상사라는 사찰로 변신을 하게 된

사연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불자가 아닌

사람들도 길상사를 찿는 발길이 많아 지곤 합니다.

 

성북동에 위치한 길상사는  입적하신 법정 스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무소유를 저술하신 스님답게 아무런 욕심없이 사시다가

 

가셨기에 우리에게 보다 더 많은 감명,

 

감화를 주셨고 오늘의 길상사라는

 

사찰이 있게 한 김영한님을 되돌아 봅니다.

 

 

길상사는 1987년 공덕주 길상화(吉祥花) 김영한님이

 

 법정스님께 요정이던 대원각을

 

 청정한 불도량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청하였고,

 

 1995년 법정스님께서 그 뜻을 받아들이셔서 6월 13일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말사 ‘대법사’로 등록을 하였고

 

1997년에는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어 등록하고 같은 해 2월14일에

 

초대 주지로 청학 스님 취임 및 1차 도량정비불사 회향을 하였습니다.

 

법정스님은 평소에는 깊은 산중에 칩거하시다가

 

일주일에 한번씩 상경하셔서

 

 이 곳에서 법회를 하시다고 순천 송광사 불일암에서 기거하셨다가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도심의 산사에서 불어 오는 바람은 정말 상쾌 하였습니다. 

 

길상화 김영한님(1916-1999)은 일제치하에 태어나 성장하였고,

 

16살의 나이에 사라져가는 한국 전통음악과

 

가무의 전습을 위하여 조선권번을 세워

 

 불우한 인재들에게 고전 궁중 아악과 가무 일체를

 

 가르친 하규일 선생님의 문하에서

 

 진향이라는 이름을 받아 기생으로 입문하였습니다.

 

 

한때 시인 백석으로부터 자야(子夜)라는 아명으로 불리었던 그녀는,

 

1953년 중앙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뒤에 몇 편의 수필과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하규일 선생 약전], [내 사랑 백석]등의

 

 저술을 내기도 했습니다.

 

 

일찍이 그녀는 바위사이 골짜기에 맑은 물이

 

흐르는 성북동의 배밭을 사들여

 

 잠깐 청암장이라는 한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이곳은 뒤에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제 3공화국 시절 국내 3대 요정의 하나였던 대원각이 되였습니다.

 

 

길상화님은 노년에 법정스님의[무소유]를 읽고 감명 받아

 

 스님을 친견한 뒤 생애의 높고 아름다운 회향을 생각하고

,

당시 시가 1000억 원이 넘는 대원각을 시주하겠으니

 

 절로 만들어 주시기를 청하였다. 그

 

 후 10년에 걸쳐 사양하시는 스님께

 

 받아 주시기를 거듭 청하여 결국,

 

1995년 그 뜻을 이루게 됩니다.

 

 

 

1997년 12월 14일 대원각이 길상사가 되던 날,

 

그 아름다운 법석에서 그녀는 법정스님으로부터

 

그저 염주 하나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만을 받았고, 7천여평 절터와 전각 모두를

 

 보시하는 그녀의 바람은 단하나, 이곳이 시민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어 그들 모두가 고뇌의

 

마음을 쉴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였고. 그 날 그녀는 수천의 대중 앞에서

 

 단 두어 마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간결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진실하게 울려나오는

 

 그녀의 음성에는 곡절 많은

 

그녀 인생의 슬픔을 넘어선 위대한 비원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1999년 11월 14일 그녀는 육신의 옷을 벗었습니다.

 

하루 전날 그녀는 목욕재계하고 절에 와서 참배하고 길상헌에서

 

 생애 마지막 밤을 묵었으며,

 

다비 후 그녀의 유골은 49재 후 유언대로

 

첫눈이 도량을 순백으로 장엄하던 날,

 

 길상헌 뒤쪽 언덕바지에 뿌려졌다고 합니다.

 

 

 

길상화님의 공덕비입니다

 

 

도서관이 있는 아래에 연꽃이 지금 늦게 피고 있더군요..

 

이쁜 잔디밭 중앙에 아름답게 만들어 두었어요

  

 

절내를 돌아 보다가 시원한게 마시고 싶어서

 

 찻집을 찾았는데 식혜가 한잔이 남았데요

 

 한잔을 시켜서 마시면서 시원한 무공해 바람을 맞으면서

 

  정겨운 데이트를
하고 있습니다..ㅎㅎ 

 

 

 

나이가 많으신 수녀님 두분이 말씀을 누고 계시네요..

 

참 보기 좋은 모습..

 

 

 

길상사 일주문을 나오니  어디서 많이 들었던 이름이 보입니다

바로 효제네 집...대문 옆에 작은 샵도 보이는데 손수 만든 보자기와

곱게 자수를 논 쿠션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언젠가 TV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보자기의 여왕이라고도 하지요...

 

  

오늘 성북동 길상사 데이트는 6시에 끝나고 ..

한성대 입구역에서 작은 식당에서

동태탕으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집으로 왔어요..

길상사는 문화유산이라고 합니다..

법정스님 덕분에 많이 알려져서

일반인들도 많이 찾는 도심의 산사이며

휴식처로 자리 잡았다고 할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