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스크랩] (우리마을 최고야) 26 장목면 궁농마을

비취. 2011. 8. 10. 16:08

"언제나 당신을 반기는 고향같은 곳, 그곳에는 정겨움과 평온함이 있습니다"
(우리마을 최고야) 26 장목면 궁농마을
2011년 08월 01일 (월) 09:44:26 김경옥 기자 oxygen0801@naver.com

   
장목에서 관포고개를 넘어 북쪽길을 따라 2km쯤 가면 경지정리를 한 반듯한 논을 가운데 두고 궁농마을이 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그 좌우로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현재 53가구 150여명의 주민이 가족 같은 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궁농마을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바람을 막아 주고 바다와 접해 있는 전형적인 반농반어 마을이다. 주민들의 주 소득원은 어업이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삼치를 비롯하여 낚시어업에 힘쓰고 겨울에는 호망과 소대망으로 대구와 메기 등을 잡고 있다. 박영준 궁농마을 이장은 "대구 호망은 만선의 기쁨을 누리는 날은 하루 1,000만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궁농마을은 주민들간에 우애가 특별히 깊어 협동이 잘되는 모범마을로 소문이 났다. 매년 열리는 장목면민의 날 행사에서도 협동심을 뽐내며 다른 마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비법을 물으니 마을에 큰 행사가 일 년에 두 번 있는데 이를 통해 마을주민들의 마음을 모은다고 박 이장은 귀띔한다.

매년 5월8일 전후에는 경로잔치를 열고 음력 7월 보름에는 대구를 넣어 끓인 떡국을 나눠 먹는다. 대구 어업을 하다 보니 귀한 대구를 비교적 쉽게 먹을 수 있어 궁농마을 사람들은 옛날부터 떡국에 대구를 넣었다. 대구를 넣은 떡국은 소고기를 넣은 것에 비해 담백하고 깊은 맛이 난다고 한다.

전해오는 말에는 옛날 궁농마을은 구릉지로 갈대밭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후 갈대밭 구릉지를 매립해 논밭으로 이용하고 있다.

궁농이란 마을이름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구릉지대가 논이 되었을 때는 구릉 논이라 했다. 구릉 논이 경상도 사투리로 변음돼 구논으로 줄어들었고 구논이 궁노실이 됐다가 한문 화하면서 궁농이라 불려지게 됐다고 전해진다.

몇년 전까지도 갈대밭이 많이 있었지만 현재는 그 일부만 남아있는 상태다.

동쪽 바닷가 돌출부에는 망봉산이 있다. 마을사람들은 동네산이라는 뜻으로 동뫼산이라고도 부른다. 낮고 나무가 울창해 경치가 좋고 거가대교를 한 눈에 바라 볼 수도 있다.

망봉산 바닷가 흰 돌배기 암벽에는 '대 일본제국해군용지'라고 쓴 글이 지금도 남아있어 일제식민지 시대의 아픔을 전해준다.

마을주민들은 1980년 말까지만 해도 마을의 땔감을 이곳에서 해결했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나무를 잘랐던 것은 아니다. 산을 가꾸며 일년에 한번 공동으로 망봉산에서 나무를 했다. 현재 망봉산에는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 공원이 조성됐다.

망봉산을 주제로 '궁노실 동뫼공원 산책로 조성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에 당선돼 마을 사람들이 직접 묘목을 심고 물을 주며 길렀다. 2회에 걸쳐 벚나무, 느티나무와 이팝나무 등 350주를 식재했다.

지난해부터는 국가사업인 '궁농 해양낚시공원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2014년이면 연결도교, 원형데크, 닻형데크, 인공어초 300개 등을 갖춘 낚시공원이 완공돼 관광객의 관광레저 욕구를 충족시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살기좋고 평화로운, 언제나 당신을 반기는 고향. 궁농마을에 가면 정겨움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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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을 즐길 수 있어 궁농마을 미래는 밝아요”

박영준 이장 인터뷰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망막하지요, 이장을 처음 맡던 해에 태풍 '매미'가 와서 저지대인 논에 바닷물이 들어차 호수처럼 보였어요, 노랗게 여물어가던 벼는 죽어가는데 신출내기 이장은 어쩔줄 몰랐지요."

영준 궁농마을 이장(61)은 2003년 거제를 덮친 태풍 매미로 궁농마을에도 엄청난 재산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한다. 대민지원을 나온 군인들과 자발적인 도움을 준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겨내기 힘들었을 거라는 말도 덧붙인다.

'비온 뒤 땅이 굳는다' 했던가, 전기와 수도가 끊겨 면사무소에서 식수를 나르는 큰일을 겪으면서 이장일에 빨리 적응하고 단련됐다고 지난 날을 소회했다.

그때부터 9년째 마을의 이장을 수행하고 있는 박 이장은 궁농마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거가대교가 개통되면서 마을의 접근성이 좋아지고 주변에 대규모 숙박시설인 콘도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러한 호재와 더불어 '궁농 해양낚시 공원 조성'사업도 지난해 첫 삽을 떴다.

"해수욕장에 리조트가 있어도 요즘에는 오감이 즐겁지 않으면 관광객이 찾질 않습니다. 볼거리, 먹을거리, 쉴거리 등 관광객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무를 심고, 산책로를 만드는 등 망봉산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비용 때문에 작은 묘목을 구입해서 심었기 때문에 당장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다음 세대 때는 보기 좋고 살고 싶은 곳이 될 것입니다"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직접 나무를 나르고 심고 물을 길러 심은 350여 그루를 나무를 보고 있으면 보험을 들어놓은 것처럼 든든하다고 한다.

그러나 박 이장은 궁농 해양낚시공원 공사에 속도가 붙질 않고 지지부진 한 것 같다며 "매년 낙동강에서 떠밀려 오는 해양쓰레기를 치우느라 마을 주민들이 애를 먹고 있는 만큼 시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주길 바란다"는 요구도 빼먹지 않았다.

나무를 심어 다음 세대까지 알뜰히 챙기는 박영준 이장이 있기에 궁농마을의 미래는 밝다.


출처 : LOVE 장목
글쓴이 : 섬마을 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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